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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스가] END 본문

스가른

[쿠로스가] END

JIHYO613 2016. 7. 25. 01:37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와 그를 짖눌렀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스가와라 코우시는 밀린 집안 일을 끝내고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일어난지 몇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는 서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노을진 오후의 포근한 봄 바람이 들어왔다. 꽤 오랜시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은 탓에 아무렇게나 길게 늘어져있는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숙면으로 몸에 피로는 거의 풀린 상태였으나, 봄바람이 실어온 나른함에 소파 위에 가로 누웠다.


"우욱-!"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목에서 쌉싸름한 쓴맛이 느껴졌다. 그는 곧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에 머리를 쳐박고 토악질을 해댔다. 빈 속이였기 때문에 개워낼 음식물은 없었다. 한참 위 액을 쏟아내고 그는 직감으로 알았다. 임신.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이 머릿 속을 스쳤다. 그리고는 곧 뒤에 떠오르는 한 사람의 얼굴에 빠득. 이를 갈았다.


"쿠로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개월전. 언젠가 사용할 날이 오겠거니 하며 쿠로오가 사뒀던 임신테스트기를 꺼냈다. 그걸 보고 있자니 테스트기를 사들고 온 쿠로오의 말이 떠오른다.


'짜잔-! 쿠로상의 남자에게 바치는 선물!'


'웬 임신테스트기? 우리 아직 제대로 된 섹스도 해 본적 없잖아.'


'언젠간 써먹겠지! 그리고 쿠로상은 코우시가 내 아이를 임신해줬으면 좋겠는데-'


웃으면서 가볍게 농담하듯 했지만, 그의 목소리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쿠로오의 말이 기뻤다. 스가와라도 그를 따라 언젠가 쿠로오의 아이를 갖겠지. 라며 웃었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내보이듯, 임테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떠있는 것을 확인한 그가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쿠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두어번 울리던 통화 연결음이 끊기고 무미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쿠로오는 항상 첫 음성은 감정없이 딱딱한 목소리다. 대화할 때는 장난끼 가득 담아 상대방을 농락하는듯한 목소리지만, 통화 상의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사귀기 전부터 그랬다.


"어디야."


"흐응~? 왜 갑자기 쿠로상이 보고싶어졌어?"


곧 이어 장난끼가 가득한 목소리다. 그는 사귀는 중에도 때때로 진지하지 않고 장난치듯 행동할 때가 많았다. 스가와라는 그런 그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풋- 웃어버리는 통에 그의 잘못을 어물쩡 넘어간 적이 많았다. 헤어지기 직전에도. 헤어지고 난 후에도 그는 여전했다.


"... 자주 가던 카페로 와. 할 말 있어."


"알았어."


의외로 즉각 나온 대답에 통화는 짧게 끝났다. 전화를 끊고 아직 화면이 깜빡거리고 있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던졌다. 소파에 부딛힌 핸드폰이 통통거리다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그는 머릿속으로 마지막으로 관계를 가진 날짜를 세어봤다. 두 달. 두달 전을 마지막으로 둘은. 아니, 쿠로오와 스가와라는 몸을 섞지 않았다. 왜 였을까. 그들은 그날따라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고, 스가와라 또한 피임약을 먹지 않았다.


"하..미쳤어."


과거의 회상은 잠시 미뤄두고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챙겨 겉옷을 주워 입고 바깥으로 나왔다. 혹시라도 발뺌할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해 잊지 않고 임테기도 챙겼다. 임신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부터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올라오는 이물감과 구역질은 참아내기가 힘겨웠다.


"우욱-!"





눈치없는 새싹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주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약속장소 근처에 다다라서 또 한번 구토를 했다. 쓰린맛이 더 강하게 났다. 경보음을 울리는 작은 생명의 신호가 불편하다. 애써 정리한 머리가 다시 흐트려져 그의 얼굴을 가렸다.


"스가..?"


"..쳇."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이였지만 멀리서도 그 실루엣이 스가와라 코우시임을 직시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려던 그는 스가와라가 전봇대를 붙잡고 주저앉으려는 모습을 보고 곁으로 뛰어갔다.


쿠로오의 모습을 본 그가 하...젠장. 마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한 달만에 첫 만남을 이런 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대충 눈치를 챈건지 다가와서 부축하는 쿠로오에게 몸을 맡겼다. 이렇게 서로의 몸이 닿아본 지도 꽤 오랜만이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주말 오후인지라 카페 안에 손님이 많았다. 두 건장한 남자가 딱붙어 있는 모습이 신기한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구석진 곳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간단하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표정이 어두운 스가와라를 지켜보던 쿠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도한 스가와라씨께서 무슨 일로 만나자고 연락을 다 했어?"


"...나 임신했어."


"..뭐?"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잠시 멍하니 있던 쿠로오의 입이 다시 열렸다. 그는 표정을 일그러트리곤 장난끼 가득한 뉘앙스는 더이상 풍기지 않는다.


"장난치지마."


"내가 이런 일로 장난칠 사람으로 보여?"


"......"


반박 할 수 없었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세번째 그를 만났을때, 쿠로오는 그가 솔직한 사람임을 눈치챘다. 가끔 농담의 소재로 거짓말을 하는 쿠로오와는 반대의 사람이었다.


"못 믿겠다면 이걸 봐."


"?!......."


벙쩌있는 쿠로오의 앞에 임테기를 내밀어 보이는 스가와라 코우시. 쿠로오는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두 줄의 짧은 선을 보고 울컥. 애써 덤덤한 척 표정을 감춘다. 이제 아무런 사이도 아닌 두 사람 사이에서 새생명이 생겨났다. 그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 숨을 쉬고 있다.


그게 내 아이라는 증거라도 있어? 따위에 삼류 드라마에나 나올 것 같은 대사는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남자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을 피운 쪽은 쿠로오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헤어진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둘은 자연스럽게 그런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동거를 시작하고 곧 결혼을 할 것같은 뜨거운 사랑을 했다. 한쪽이 반대쪽에 매달리는 질척이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N극과 S극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싶은데?"


"......"


쿠로오의 표정을 살핀 스가와라가 잠시 망설이다 결심한듯 표정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지울거야."


".....!!"


"우린 이제 아무사이도 아니잖아."


"....."


"헤어질 때, 서로 인생에 관여하지 않기로 한거 기억하지?"


"....."



스가와라의 말을 듣고 있던 쿠로오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이렇게 끝나는건가. 이게 진짜 끝이구나. 어쩌면 그는 스가와라에게서 다시 사귀자는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는 아직 스가와라에게 미련이 있다. 깔끔하게 헤어진듯 보이지만 쿠로오는 그렇게 쿨한 남자가 아니다. 헤어지고 나서 몇번이고 다시 그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스가와라의 삶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한달가까이 되었을때, 갑작스런 스가와라의 연락이 당황스러웠다. 곧 당황스러움은 사라지고 가슴이 떨려왔다. 떨림을 감추려 내리깔은 목소리가 어색했다. 할 말이 있다는 그의 말. 무슨 말을 할지,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지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뻤다. 그런 쿠로오가 한가닥 희망을 갖고 있던 마음이 깨졌다.


"마냥 숨기고 싶지 않아서 불러낸거야. 그럼 먼저 일어날게."


"..그래."


스가와라는 쿠로오의 표정에 개의치 않았다. 말을 마친 그의 작별인사는 차가웠다. 카페를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쿠로오의 가슴이 따갑게 아렸다.


‘그래. 그렇게 해.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진짜 나 없는 새 삶을 살겠구나. 넌 의외로 단호하고 직선적인 면이 있었지. 너의 그런 면을 좋아했어. 지금도 좋아하고 있어. 네 성격을. 네 모습을. 너를. 그리고 내 아이를 임신해줘서 고마웠어.` 이 말을 담은 짧은 대답을 끝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되었다. 뜨겁게 사랑을 하고, 몸을 섞고 사랑을 나눴다. 그리고 헤어졌다. 잠시 다시 만났지만, 결국엔 남이 되었다. 이것이 두 사람의 마침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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