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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걸 쓰고 올립니다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전과 달리 세상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꿈, 희망이라는 단어는 뜻을 잃은지 오래다. 급기야, 온기 없는 검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형체를 본 사람들은 '그것'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동경하다니..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 즉, 자살을 '불법'으로 개정했다. 경찰들은 시체에 가차없이 벌금을 물었다. (벌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구도 그들을 욕하는 이는 없었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건지, 시체의 머리를 중심으로 검붉은 액체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경찰은 한 숨을 푹 내쉬곤 싸늘하게 식어가..
"너 왜 이러고 있냐?" "... 여긴 어떻게‥" 제 눈 앞에 나타난 작은 그림자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한 사람에게 옮겼다. 아, 짧은 탄식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지금 이 순간 제일 보고싶었던 얼굴과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제 눈 앞에 있다. 짜증이 밀려왔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상반되게 놀란 토끼 눈을 한 야쿠가 리에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말과 다른 표정. 그는 전부터 야쿠의 그런 표정이 맘에 들지 않았다. "쿠로오가 다녀오라고 해서." "아- 네. 그러셨군요." 리에프는 내심 무엇인가 기대했다는 것에 제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아무리 다가가보려해봐도 야쿠는 리에프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야쿠가 제 스스로 리에프를 찾아올리가 만무했다. 역시나 배구부 주장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왔다..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여름날의 열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렸다. 여름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스가와라는 제 무릎 위에 놓여있는 작은 머리를 어루만져 보았다. 까슬까슬. 따끔따끔.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왜?"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스가와라의 손길이 신경쓰였는지 눈을 감고 그의 무릎에 누워있던 타나카가 시선을 위로 올리며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너 머리 길러 볼 생각은 없어?" "난 짧은게 좋아! 머리도 금방 감을 수 있고 여름에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 타나카가 벌떡 일어나 방방 뛰었다.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 풀이 떨어질 듯 말 듯 달랑거렸다. 타나카는 늘 씩씩해서 좋구나. 그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몸이 약한 스가와라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의 모습을 ..
그 사람과 함께 거닐던 익숙한 교정, 함께 땀을 흘리며 몸을 뒹굴리던 체육관, 그러나 익숙한 등번호의 주인은 바뀐지 오래다. 리에프의 학년이 2학년으로 올라가고 3학년의 선배들이 모두 졸업한 그 시점에 리에프의 배구 인생은 나이를 먹지 않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지만 큰 대들보 같은 제 오랜 짝사랑에게 고백을 하려던 그 날, 상대는 졸업을 해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만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에프는 서서히 그에 대한 마음을 접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생각이 피어오를 때마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야쿠선배, 저 없는 대학생활은 좀 만족스러우세요?" 합숙때 함께 찍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작게 속삭여 본다,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진 속의 야쿠는..
"안녕." "응." 메마른 입술을 들썩였다. 마주한 그의 표정을 살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끝이다. 그래. 처음 시작도 이렇게 시작했었다. 처음과 같은 마침표라니 우리답다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끝내기. 그게 우리 둘의 약속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 하고 싶은대로 사랑을 나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 우리 사이를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어 갔다. "잊지 않았지?" "응." 환하게 웃어보이며 짧은 대답으로 마침표를 찍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옛사랑이 아름다워보이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이제 남이네.. 그동안 고마웠어." "그래. 고마웠다.." 그를 따라 입꼬리를 위로 쭉 당겨 올리며 웃어보였다. 어색해보이지 않기를.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논커플링--------------------------------- 너와 내 거리가 가까워질 날이 오기는 하는걸까. 언제까지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걸 알고 있다.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니. 표현한다고 받아들여지긴 할까. 넌 항상 단단했다. 크고 단단한 벽. 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은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대화만을 선호하고 사람사이에 일정거리를 두고 자신을 내비춰보이지 않으려 하는 네가 더욱 궁금해졌다. "후타쿠치, 이따가 같이 가자." "싫어요. 선배, 저 먼저 갈게요." 체육관 청소를 마친 모니와가 말했다. 후타쿠치는 아무렇지않게 퉁명스러운 말을 툭 내뱉고 자리를 떠났다. 기분 나쁠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모니와는 후타쿠치를 불러 세우지 ..
야쿠는 지금 눈 앞에 있는 관경에 어이가 없다. 리에프에게서 급하게 집으로 와달라는 문자를 받고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그는 리에프의 집으로 향했다. 의외로 두 사람의 집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도착하기까지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에프의 집은 일본에 같은 땅이라고 하게에는 다르게 유럽 어딘가 크고 고풍스러운 저택같은 느낌이었지만, 등굣길에 자주 지나치는 집이었기에 위화감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리에프의 집 앞에 도착한 야쿠는 초인종을 꾹 눌렀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무런 기척이 없자 여러번 반복해서 눌러댔지만, 여전히 문 앞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것 처럼. 문에 귀를 바짝 갖다대보았으나 정말 집 안에는 아..
"야쿠선배! 결혼해줘여!!" 아. 또 저 소리. 오늘로 리에프가 헛소리를 하며 내 뒤를 따라다닌지 딱 3개월이 되었다. 처음 결혼하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마냥, 귀엽다는 듯이 어물쩍 넘어 가기에는 운동부 선배와후배. 남자대남자, 동성간의 사이였다. 과연 볼 꼴 못볼 꼴 다 본 운동부 후배에게 청혼을 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살살 달래면서 거절하기를 몇 번. 이젠 거의 한계치에 다다랐다. "리에프, 이제 좀 그만해! 내가 너랑 결혼을 왜 하냐고!" 얼마나 흔들어댄건지. 덜컹거리는 현관문에 체중을 실어 붙잡고 소리쳤다. 내 목소리에 리에프의 기척이 멈췄다. 언제까지 집에 찾아 올건지.. 귀찮고 성가시다. "선배!! 문 좀 열어주세여!! ..
"선배 언제까지 피해다니기만 할거예요?" "내가 널 언제 피했다고 그래?" "지금도 피하고 있잖아요. 왜 제 얼굴을 안보는건데요?" "......." 리에프의 말에 야쿠는 어깨를 움찔거렸다. 리에프의 말이 맞다. 야쿠는 몇 달전 어찌된 영문인지 키만 큰 바보리에프가 잘생겨보이고, 실수를 하는 모습들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 여자보단 남자한테 더 관심이 많다는 건 제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남자를 사귄 경험도 몇 번 있긴했지만 연하는 취향이 아니라고. 특히나 리에프같은 타입에 연하는 싫어하는 쪽에 속해있다. 자신이 싫어하는 요소만 골라 갖고 있는 리에프를 좋아한다니. 그럴리가 없다고 도..
[잠깐 좀 만나지.]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건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주 오래 된 소꿉친구 사이지만, 크게 싸운 뒤로는 일주일이 넘게 단 한번도 전화나 문자가 오가지 않았었다. 아침 잠이 많은 나는 매일 아침마다 녀석의 전화에 눈을 떴다. 하루 중 제일 먼저 들었던 목소리가 없어지자마자 보기좋게 지각을 해댄지도 일주일이 다되가던 참이었다. 여전히 화가 나 있는건지 딱딱한 내용의 문자가 눈에 거슬렸다. "잠깐 좀 만나지. 흥, 만나자고 하면 누가 좋다고 나갈 줄 알아?!" 신경질적으로 내던진 핸드폰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도 아직 화 안풀렸다고. 엎어진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는데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 누구지? 이와쨩인가? 확인해 볼까? 이와쨩이 아니면..? "에라이, 이와쨩이건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