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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걸 쓰고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15살의 보쿠토상.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계신다면 저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전 미래의 아카아시 케이지 입니다. 그 쪽 세상에 아카아시는 아직 당신과 만나지 않았습니다만,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둘만의 추억의 장소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이상한 쪽지가 들어있었다.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사람에게서 온 미래의 편지? 쪽지를 들고 반 아이들에게 누가 쓴거냐고 물었지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누가 이런 장난을.. 아무렇게나 구겨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하늘 정 가운데 올라있었다. 체육수업이 있는지 운동장 가운데에 서 있는 체육복 무리가 보였다. 언제봐도 저 체육복은 촌스럽게만 보인다. 위 아래 모두 주황색으로 색을 맞춘 여름용 체..
스가와라는 말라가고 있었다. 카게야마를 이기고 싶은 마음. 더 잘하고 싶은 욕심. 스가와라는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채찍질했다. 소꿉친구인 다이치 조차도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스가와라는 옆에서 잡아주는 이 하나 없이 많은 것을 이뤄내려 애썼다. 그의 노력에 칭찬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때마다 그는 자신을 더욱 옥죄었다.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는지, 세이죠학원 과의 경기 도중 쓰러진지 3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악몽에서 깨어나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악몽이라도 꾼거야?" ".....?" 세이죠의 주장이자, 주전 세터인 오이카와가 제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널 처음 만난 날,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넌 수줍게 어르신의 뒤에 숨어 바지자락을 잡고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온 세상이 다 하얗게 변해 있었는데, 네 주위만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칠흑같이 까만머리가 주변의 색깔을 바꾸고 있었다. "안녕!" 움찔. 고개를 숨겼다가 다시 빼꼼. 짧은 목례를 하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넌 낯을 가리는가 싶다가도 내 곁으로 쪼르르 다가와 말을 걸고 지그시 지켜봐주었다. 그 모습이 귀여웠다. 어느 날엔가 제 배게를 끌어안고 내 방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다. "보쿠토상, 같이 자도 돼요?" 그때, 머뭇거리며 문을 두드리던 너의 목소리에서 알았던 것일까.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 꿈을 꿨다. 네가 내게서 떠나가는 꿈. 너무나도 끔찍해서 꿈이라..
하나마키 타키히로. 머릿 속에 윙윙 맴도는 그 이름은, 내 스스로를 옥죄어 온 시간만큼이나 떠올리기가 고통스럽다. 그의 얼굴을 떠올릴때마다 밝고 선명했던 사진이 조금씩 타들어갔다. 잊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잊을 수 없으리라고. 꽃의 이름은 하나마키 타카히로. 두번 다신 피지 못할 나만의... * 꽃이 진 봄은 그 계절의 힘을 잃는다. 하나마키가 죽고 마츠카와는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시간의 틈을 두지 않았다. 시들어 죽은 꽃에 눈물을 삼킬 여유를 두지 않기 위해. 꽃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넌 나 없어도 잘 살테니까 걱정 안해도 되지?' 마츠카와는 하나마키몸이 약해진 뒤로 그의 말을 한글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 혹여나 잘못 들었을까. 꽃의 말을 놓칠세라 되묻기..
"생일 축하해 켄마."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아닌 조금은 진지한 얼굴을 한 쿠로오가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이었다. 생일.. 어렸을 적부터 집에선 제대로 챙겨받지 못했던 이름 뿐인 하루는 제 소꿉친구의 짧은 한마디로 하여금 켄마를 기쁘게 했다. 처음 쿠로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고마움보다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이때까지 그에게 생일은 그저그런 아무런 날도 아니었기 때문에 축하한다는 쿠로오의 말이 이상하게까지 느껴졌다. "축하해..?" "응?" "생일.. 한번도 축하받은 적 없어.." "뭐?!?!" "......" "생일케익은? 생일선물은?" "......." "그럼 생일 축하노래도..?" "... 들어본 적 없어.." 당연하게 축하받을 날이라고 여겨왔던 생일이..
온갖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치료에 임했지만, 보쿠토는 실명하고 말았다. 약물치료로는 더 이상 호전될 수 없다는 주치의의 판정이었다. 오직 각막 이식만이 그의 눈을 살릴 수 있는 전부였다. 이식 가능한 신체장기 중 각막은 기증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신체부위 중에 하나다. 이미 실명해버린 상태에서 약물치료를 한들 수명을 다한 눈동자에 빛이 맺힐 리 만무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보쿠토가 그다지 침울해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마 스스로 제 눈을 자처한 든든한 지원군이 옆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지원군 또한 성한 몸은 아니었다.보쿠토 보다 어린 나이인 아카아시는 갑작스럽게 소아마비를 앓고 말았다. 덕분에 허리부터 그 아래쪽은 감각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하체마비..
비가 내리는 어둠 속, 촉촉하게 젖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던 하얀 피부의 여리여리한 체형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다이치, 가지마." "... 스가, 난 가야 해. 붙잡지 마." 다이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는 스가와라의 눈을 애써 외면했다. 자신이 떠나야만 하는 이유,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것이 스가와라였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다. 제 앞에 그가 서 있는 것 조차 싫었다. 다이치는 제 팔을 붙잡으려는 스가와라의 손을 거세게 쳐냈다. "건드리지 마."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까지 되버린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순간 온 몸에 소름이 ..
하루에도 수십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한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전과 달리 세상은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목숨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꿈, 희망이라는 단어는 뜻을 잃은지 오래다. 급기야, 온기 없는 검은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형체를 본 사람들은 '그것'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동경하다니..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 즉, 자살을 '불법'으로 개정했다. 경찰들은 시체에 가차없이 벌금을 물었다. (벌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구도 그들을 욕하는 이는 없었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건지, 시체의 머리를 중심으로 검붉은 액체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경찰은 한 숨을 푹 내쉬곤 싸늘하게 식어가..
의사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실생활에 꽤 많은 불편함을 안겨주었다. 보쿠토는 학생이자 배구부의 주장으로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이상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야 했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히,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옆에서 그의 일을 대신 해주거나 도와주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이 학교 후배, 배구부 부주장으로서의 일이었지만, '애인'으로서. 당연히 자신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선배?" 보쿠토는 매니져들이 작성한 일지를 검토하고 있는 아카아시의 옆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일인냥 열심히 ..
아카아시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그의 병실을 찾아갔을 때 보쿠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아카아시는 그녀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 아닐까. 아니 무슨 말로 그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운 것인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그저 밝고 씩씩한 보쿠토로 되돌아 온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보쿠토는 수술 당일이 되었을 때도 전처럼 무섭다고 겁먹거나 떨지 않았다. 이제 괜찮다며, 잘 끝내고 오겠다며 아카아시의 등을 짝짝 때려대기도 했다.수술 후,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부작용이 그의 생명을 갉아먹으려 했다. 고열에 시달리던 보쿠토는 또 다시 뇌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보쿠토는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