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쓰고 싶은걸 쓰고 올립니다

[보쿠아카] 돌이켜보면.. ②_⑵ - 윤즌님 썰 본문

보쿠아카

[보쿠아카] 돌이켜보면.. ②_⑵ - 윤즌님 썰

JIHYO613 2016. 8. 30. 23:06

아카아시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어머니와 그의 병실을 찾아갔을 때 보쿠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아카아시는 그녀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건 아닐까. 아니 무슨 말로 그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운 것인가 궁금했지만, 일부러 캐묻지 않았다, 그저 밝고 씩씩한 보쿠토로 되돌아 온 것이 고마울 뿐이었다. 보쿠토는 수술 당일이 되었을 때도 전처럼 무섭다고 겁먹거나 떨지 않았다. 이제 괜찮다며, 잘 끝내고 오겠다며 아카아시의 등을 짝짝 때려대기도 했다.

수술 후, 무조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던 기대감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부작용이 그의 생명을 갉아먹으려 했다. 고열에 시달리던 보쿠토는 또 다시 뇌손상을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보쿠토는 목숨을 구하는 대신 시력을 잃었다

앞을 볼 수 없다는 것.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 자유분방한 성격의 보쿠토로서는 눈이 안보인다는 건 지옥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모든 검사가 다 끝나고 안정을 취하라는 주치의에 말에 반강제로 병실 밖을 나갈 수 없게 된 그는 시종일관 허공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다. 호박색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맺히지 못했다. 그런 보쿠토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카아시는 자진해서 그의 눈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제가 눈이 되어 드릴게요."

 

그의 말에 보쿠토는 작은 아이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졌다. 차분한 얼굴의 조금은 나른한 듯한 눈을 가진 아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 그의 얼굴을 제 눈으로 보고싶었다. 자신의 눈으로 그의 얼굴 구석구석. 표정 하나하나 모든 것을 다 보고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헤헷. 고마워."


보쿠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에 가장 크고 밝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카아시의 도움을 통해 조금이나마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발을 맞춰가며, 길을 걷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쿠토는 제 몸에 적응해 갔다. 그러던 중, 아카아시에게도 병마가 들이닥쳤다. 보쿠토의 눈이 되어주던 그는 더이상 스스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당황스러웠다. 아카아시는 제 어머니의 가운을 붙잡고 애원했다.


"거짓말이라고 해주세요. 제발.."


"......."


그의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직업이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리를 고쳐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원통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해진 약을 먹고 꾸준한 재활치료가 최선이었다.


불편한 하루가 계속 될 수록, 그는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멀쩡히 걷고 뛰었던 두 다리는 쉴틈없이 저려왔고 점점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만 같았다, 며칠째 보쿠토에게도 가지 못했다. 자신이 보쿠토보다 더 불편한 몸이 되어버린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것보다도 보쿠토의 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 탁.


아카아시는 멍하니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큰 나무를 중심으로 화단이 빙 둘러 있는 작은 산책공간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제 걸음으로 1-2분, 몇발자국 되지 않는 거리임에도,


- 탁.


"아카아시!!!"


"어, 보쿠토 형,,?"


흰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다가오는 보쿠토의 모습에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없어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의 눈을 대신할 흰 지팡이를 다룰 줄만 안다면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을 줄일 수 있었다.


'혼자서 다닐 수 있게 된건가.'


탁. 지팡이가 침대에 부딛히는 소리가 병실 안에 울려퍼졌다. 그가 손을 더듬거리며 허공을 휘적거리는 모습을 본 아카아시는 몸을 기울여 보쿠토 쪽으로 간이의자를 살짝 밀어주었다. 툭. 제 다리께에 닿은 간이의자를 손으로 더듬어 확인한 보쿠토가 조심스럽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뭔가 찾으려고 하는 모습까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나보네. 이제 내 도움이 없어도..'


"아카아시,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진짜 괜찮은거 맞아..?"


붕대로 가려진 눈이 씰룩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아카아시는 특유의 그 눈짓은 잃지 않은 것 같아 안심했다.


"네. 괜찮아요. 재활치료 열심히 받으면 다시 걸을 수 있을거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 그래. 아카아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가고싶은 곳이요?"


"응!! 내가 어디든 다 데려다 줄게."


"네..?"


아카아시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자신의 다리가 되어주겠다는 그의 말에 왠지 마음이 뭉클했다.


"네가 내 눈이 되어준 것처럼, 이제부터는 내가 네 다리가 되어줄게."


자기만 믿으라는 듯, 제 가슴을 탁 치며 말하는 보쿠토의 모습이 듬직했다.


"그리고, 너도 다시 내 눈이 되어줘."


울컥.


"그, 그래도 돼요..? 필요 없어진거 아니었어요..?"


"에? 무슨 소리야. 네가 없으면 난 앞을 볼 수 없는 걸!!"


"고마워요.."


아카아시는 자신이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허탈한 듯 작은 실소를 내뱉었다. 보쿠토는 계속 그를 필요로 하고 원하고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아카아시가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