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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걸 쓰고 올립니다
"너 왜 이러고 있냐?" "... 여긴 어떻게‥" 제 눈 앞에 나타난 작은 그림자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선을 한 사람에게 옮겼다. 아, 짧은 탄식이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지금 이 순간 제일 보고싶었던 얼굴과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제 눈 앞에 있다. 짜증이 밀려왔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상반되게 놀란 토끼 눈을 한 야쿠가 리에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말과 다른 표정. 그는 전부터 야쿠의 그런 표정이 맘에 들지 않았다. "쿠로오가 다녀오라고 해서." "아- 네. 그러셨군요." 리에프는 내심 무엇인가 기대했다는 것에 제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아무리 다가가보려해봐도 야쿠는 리에프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야쿠가 제 스스로 리에프를 찾아올리가 만무했다. 역시나 배구부 주장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왔다..
답답함에 조금이라도 빨리 터트리고 싶은데 몸은 제 의지를 따라주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소리는 되돌아 오지 않았다. 크게 소리 쳐보려 입을 열어도, 혹시나 고통을 느끼면 터져나오지는 않을까. 제 몸에 상처를 내보고, 일부러 몸을 혹사시켜보아도 목소리는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안해진 마음에 제 자신에게만 음소거 버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답답하기는 그의 애인도 마찬가지다. 굵고 큰 제 애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지가 며칠이 지났는지 몇달이 지났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이 긴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하면 고쳐지는 것인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인지 의사들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는 무신경한 ..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여름날의 열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렸다. 여름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스가와라는 제 무릎 위에 놓여있는 작은 머리를 어루만져 보았다. 까슬까슬. 따끔따끔.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왜?"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스가와라의 손길이 신경쓰였는지 눈을 감고 그의 무릎에 누워있던 타나카가 시선을 위로 올리며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너 머리 길러 볼 생각은 없어?" "난 짧은게 좋아! 머리도 금방 감을 수 있고 여름에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 타나카가 벌떡 일어나 방방 뛰었다.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 풀이 떨어질 듯 말 듯 달랑거렸다. 타나카는 늘 씩씩해서 좋구나. 그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몸이 약한 스가와라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의 모습을 ..
지루하기만한 병원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마지막 수술이 될 2차 뇌수술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날짜가 다가오니 간단한 수술이라는 주치의에 말에도 날이 갈 수록 보쿠토의 불안감은 배가 되었다. 아카아시는 큰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입원하고 있는 와중에도 긍정에너지가 넘치던 보쿠토였기 때문에 2차수술을 두려워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혹시나 어디가 안좋은 것일까 온통 보쿠토의 걱정으로 머릿 속을 메우고 있었다. "형, 많이 무서워요?" "응. 나 무서워 아카아시." 미세하게 떨리는 보쿠토의 목소리에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카아시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보쿠토에게 가까이 다가가 질문했다. 보쿠토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뭐가 무..
그 사람과 함께 거닐던 익숙한 교정, 함께 땀을 흘리며 몸을 뒹굴리던 체육관, 그러나 익숙한 등번호의 주인은 바뀐지 오래다. 리에프의 학년이 2학년으로 올라가고 3학년의 선배들이 모두 졸업한 그 시점에 리에프의 배구 인생은 나이를 먹지 않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지만 큰 대들보 같은 제 오랜 짝사랑에게 고백을 하려던 그 날, 상대는 졸업을 해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만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에프는 서서히 그에 대한 마음을 접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생각이 피어오를 때마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야쿠선배, 저 없는 대학생활은 좀 만족스러우세요?" 합숙때 함께 찍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작게 속삭여 본다,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진 속의 야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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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응." 메마른 입술을 들썩였다. 마주한 그의 표정을 살폈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끝이다. 그래. 처음 시작도 이렇게 시작했었다. 처음과 같은 마침표라니 우리답다고 생각했다. 미련 없이 끝내기. 그게 우리 둘의 약속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서로 하고 싶은대로 사랑을 나눴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 우리 사이를 조금씩 멀어지게 만들어 갔다. "잊지 않았지?" "응." 환하게 웃어보이며 짧은 대답으로 마침표를 찍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옛사랑이 아름다워보이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이제 남이네.. 그동안 고마웠어." "그래. 고마웠다.." 그를 따라 입꼬리를 위로 쭉 당겨 올리며 웃어보였다. 어색해보이지 않기를.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논커플링--------------------------------- 너와 내 거리가 가까워질 날이 오기는 하는걸까. 언제까지고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걸 알고 있다.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니. 표현한다고 받아들여지긴 할까. 넌 항상 단단했다. 크고 단단한 벽. 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벽은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볍고 장난스러운 대화만을 선호하고 사람사이에 일정거리를 두고 자신을 내비춰보이지 않으려 하는 네가 더욱 궁금해졌다. "후타쿠치, 이따가 같이 가자." "싫어요. 선배, 저 먼저 갈게요." 체육관 청소를 마친 모니와가 말했다. 후타쿠치는 아무렇지않게 퉁명스러운 말을 툭 내뱉고 자리를 떠났다. 기분 나쁠만한 상황이었음에도 모니와는 후타쿠치를 불러 세우지 ..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와 그를 짖눌렀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스가와라 코우시는 밀린 집안 일을 끝내고 소파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일어난지 몇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해는 서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노을진 오후의 포근한 봄 바람이 들어왔다. 꽤 오랜시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은 탓에 아무렇게나 길게 늘어져있는 머리칼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숙면으로 몸에 피로는 거의 풀린 상태였으나, 봄바람이 실어온 나른함에 소파 위에 가로 누웠다. "우욱-!"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목에서 쌉싸름한 쓴맛이 느껴졌다. 그는 곧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통에 머리를 쳐박고 토악질을 해댔다. 빈 속이였기 때문에 개워낼 음식물은 없었다. 한참 위 액을 쏟아내고 그..
"오늘 우리 집에 올래?" "어..?" 얼떨결에 마츠카와의 집에 가게 되었다. 뭐. 내 발로 들어온 거지만. 마츠카와의 집은 의외로 평범했다. 생긴건 마피아 보스 아들처럼 생겨가지고 평범한 가정집 아들내미라니. 어울리지 않네. "내 방은 거실 옆이야. 먼저 들어가 있어. 마실 거 가지고 들어갈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마츠카와의 방으로 들어섰다. 1인용 싱글침대와 책상 하나 옷장 하나 밖에 놓여진 가구가 없어서 그런지 방이 꽤 넓고 컸다. 혼자 쓰는 방은 참 넓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둥이 형제가 있는 난, 형이랑 한 방을 나눠서 사용하고 있는지라, 항상 복잡하게 꽉 채워져 있는 느낌이었는데, 외동인 마츠카와의 방은 고요하고 단순했다.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을 훑어보고 홀로 방 구경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