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걸 쓰고 올립니다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여름날의 열기를 가득 품은 바람이 머리칼을 간지렸다. 여름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스가와라는 제 무릎 위에 놓여있는 작은 머리를 어루만져 보았다. 까슬까슬. 따끔따끔. 손바닥이 간지러웠다. "왜?"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는 스가와라의 손길이 신경쓰였는지 눈을 감고 그의 무릎에 누워있던 타나카가 시선을 위로 올리며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너 머리 길러 볼 생각은 없어?" "난 짧은게 좋아! 머리도 금방 감을 수 있고 여름에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 타나카가 벌떡 일어나 방방 뛰었다. 입에 물고 있던 강아지 풀이 떨어질 듯 말 듯 달랑거렸다. 타나카는 늘 씩씩해서 좋구나. 그를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몸이 약한 스가와라는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의 모습을 ..
지루하기만한 병원생활을 청산하기 위해 마지막 수술이 될 2차 뇌수술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날짜가 다가오니 간단한 수술이라는 주치의에 말에도 날이 갈 수록 보쿠토의 불안감은 배가 되었다. 아카아시는 큰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냈고, 입원하고 있는 와중에도 긍정에너지가 넘치던 보쿠토였기 때문에 2차수술을 두려워하는 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혹시나 어디가 안좋은 것일까 온통 보쿠토의 걱정으로 머릿 속을 메우고 있었다. "형, 많이 무서워요?" "응. 나 무서워 아카아시." 미세하게 떨리는 보쿠토의 목소리에 무엇이 그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카아시는 의자를 끌어당겨 앉아 보쿠토에게 가까이 다가가 질문했다. 보쿠토의 눈에 약간의 눈물이 맺혀있었다. "뭐가 무..
그 사람과 함께 거닐던 익숙한 교정, 함께 땀을 흘리며 몸을 뒹굴리던 체육관, 그러나 익숙한 등번호의 주인은 바뀐지 오래다. 리에프의 학년이 2학년으로 올라가고 3학년의 선배들이 모두 졸업한 그 시점에 리에프의 배구 인생은 나이를 먹지 않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던, 작지만 큰 대들보 같은 제 오랜 짝사랑에게 고백을 하려던 그 날, 상대는 졸업을 해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만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에프는 서서히 그에 대한 마음을 접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그의 생각이 피어오를 때마다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야쿠선배, 저 없는 대학생활은 좀 만족스러우세요?" 합숙때 함께 찍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작게 속삭여 본다, 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사진 속의 야쿠는..